군인들이 대학 캠퍼스까지 탱크를 끌고 왔다.
웬만한 공무원 월급의 열 배 정도였다.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4월 26일에는 끔찍한 사고도 있었다.
집안은 부자라고 할 수 없지만 끼니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상금은 그때 돈으로 30만원인가.그런데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불려간 적이 있다.
이게 과장이 아니라는 걸 나는 학창 시절 호남선 열차를 타보고 절실히 느꼈다.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림으로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위수령 발동은 지금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지역주의 깨려면 호남 대통령 나와야 그해 4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사진은 같은 해 5월 고려대 학생들이 교련 폐지와 구속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 시위를 하는 모습.안타까운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대학 생활 4년 내내 정치적 혼란이 심했다.다행히 한 분이 그래 맞다고 내 편을 들어줬다.